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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알고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 영화 <컨택트(Arrival)>를 보고

by 로은 2026.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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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책을 사두었는데 너무 두꺼워서 손이 잘 안갔다.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컨택트(Arrival)>가 훨씬 몰입감이 좋다고 해서 먼저 보게되었다.

 

미래를 알고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영화는 처음에 외계 생명체 등장으로 시작한다. 기존 영화들처럼 외계인과 전쟁이 벌어지는 SF 영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사랑과 선택, 이미 정해진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과도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외계인에게 무기(weapon), 도구 혹은 선물을 얻은 주인공 루이스는 시간을 원형적으로 인식한다. 나는 직선적으로 이루어진 시간이 언어 체계의 변화로 원형적으로 인식된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어쨌든, 루이스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의 흐름처럼 연결되면서 자신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도, 아이를 갖게 될 것도, 그리고 결국 그 관계에서 상실과 아픔을 겪게 될 것도. 그런데도 그녀는 그 삶을 선택한다.

 

※ 출처: 영화 <컨택트(Arrival)> 포스터

1. 왜 나는 그 사람을 선택했을까

영화를 보면서 오래전에 내가 썼던 글 하나가 생각났다. 남편과 다툰 하루, 내가 왜 결혼했을까 생각하며 썼던 글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연애할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둘다 고집이 있는 편이라, 생각이 부딪힌 적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남편 생각도 타당하다.) 이해받지 못해 서러워졌던 밤, 왜 결혼을 했을까 생각해본적 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씩 웃는 모습이 멋져서 계속 보고 싶었다. 그 사람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엄청 멋지다고 생각했고, 그 모습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만났던 것 같다. 한 번 더 만나고 싶었고, 또 다음 날에도 보고 싶었고, 그렇게 시간이 쌓여 결국 결혼을 했다. 우리가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인지 등등 많은 부분을 고려하긴 했다. 그렇지만 결국 그 모든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리게 한 것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던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이었다.

 

2. 미래를 알고도 사랑할 수 있을까

<컨택트>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자신이 선택한 삶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게 된다. 사랑이 시작될 것도 알고, 그 사랑에서 소중한 순간들을 얻게 될 것도 알고, 결국 아주 큰 상실을 겪게 될 것도 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살아간다.

 

나는 소위 '결정장애'를 갖고 있다. 어릴때 시간이 직선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지금 내가 내린 선택으로 미래의 내가 후회를 하고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시간이 지나며 주변에 이런 마음을 털어놓자, 바꿀 수 없는 것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조언을 듣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상상이 매우 와닿았다. 나도 선택의 순간에 나의  삶의 총체적 모습을 한번에 인식할 수 있으면 좋으려만. 그렇다면 좀 더 현명하고 완벽한 결정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과거에 내렸던 그 선택들, 그 당시에 미래의 모습을 알았다고 해도 다르게 선택할 수 있었을까? 과거에는 그렇게 하고 싶어서, 선택했다. 그만큼 소중했고 설령 상처 입을지라도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몰라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이 충분히 소중하기 때문에 미래의 가능성을 감수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방향을 알더라도 동일한 선택을 한다면, 나의 결정장애도 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 좀 더 용기있고 낭만적이다.

 

사랑을 하면 상처받을 수 있다. 결혼하면 후회할 수도 있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과도 헤어질 수 있고,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실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관계에는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끝이 온다. 그 사실을 모르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실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 그 사람과 함께 보낸 한 계절, 함께 웃었던 저녁, 평범하게 걸었던 길, 별것 아닌 농담에 웃었던 순간. 그런 기억들이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 비극으로 끝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결혼 생활에서 예기치 못한 갈등을 마주했을 때, 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혹시 이 결혼이 언젠가 비극으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많은 상처를 남긴다고 해도, 처음 이 사람을 좋아했던 것 그리고 결혼을 결심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겠다"고.

 

우리는 지금 잘 지낸다. 신혼 1년동안 맞춰간다고 하는데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었던 것 같다. 몇달 전, 나의 선택에 대해 매우 용기있고 강단있게 결론을 내린 덕분인지, 우리의 결혼 생활과 일상이 나에게는 특별하고 소중하다.

 

미래의 결말과 지금까지의 선택은 꼭 같은 방식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결혼뿐만 아니라 커리어, 우정, 인간관계, 재테크 등 우리는 수 많은 선택을 한다. 어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 관계 안에서 내가 행복했던 시간들까지 잘못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택이 나중에 아픔을 가져왔다고 해서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 선택이 사기 등으로 현명하지 못한 것이었다면 반추하며 대책을 세워야겠지만, 그 당시 내가 합리적이고 또 낭만적으로 선택한거라면, 그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내가 남편의 웃는 모습을 좋아했던 순간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 웃음을 조금 더 보고 싶어서 계속 만났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결혼했다. 그 순간의 마음은 결과와 상관없이 진짜였다. 그런 감정은 처음 느껴봤다. <컨택트>에서 루이스가 이안의 고백을 듣고, 미래를 보며 행복과 사랑, 회한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면서, 용기있게 키스한다. 그 장면을 보며, 미래를 볼수는 없지만, 어떤 결과가 따르더라도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다는 결심, 그 결심을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그 당시에 결정을 내리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설레임이 떠올랐다.

 

어쩌면 어떤 선택의 가치는 결과뿐 아니라 그 선택으로 인해 살아볼 수 있었던 시간에도 있는지 모른다. 끝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의 한 순간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해도, 그때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사실만큼은 후회하지 않는 것.

 

나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 그 불확실성을 기꺼이 기쁨으로 맞이하고 용기있게 살아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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