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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이 나를 작고 초라하게 만들 때 -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고

by 로은 2026.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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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았다. 큰 상실감을 겪고 건강을 챙겨야 해서 긴 휴가를 낸 시점이었다. 총 16화에 달하는 드라마를 단숨에 정주행 했다. 호흡이 길고 느려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한번에 정주행하게 된 이유는 드라마 첫 화의 장면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경영학과에 입학하였으메도, 남들이 선망하는 길을 포기하고 바이올린을 하고 싶어 4수 끝에 입학한 송아. 기대했던 무대에서 송아는 지휘자가 바이올린 연주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성적순으로 배치된 자리 맨 끝에 앉아 있어 쫓겨난다. 그리고 그 오케스트라 무대 연주 중 피아노 솔리스트인 박준영의 연주를 무대 뒤에서 바라보며 되뇌인다.

 

"눈물이 났다. 그가 쏟아내는 음악이 너무 뜨거워서, 데일 것만 같아서. 내 안에 담긴 것이 너무 작고 초라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났다."

 

이 장면을 보는데 가슴이 시큰했다. 마음이 아려왔다. 어느덧 30대, 20대의 기억은 경험이 되고,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렴풋히 외면해왔던 아픔이 느껴졌다. 나의 20대에도 그 속에 함께하고 싶었는데 제외되었던 순간 순간들이 있었다.

 

1. 좋아하는 것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 때

이십대 초반까지 나는 열정이 넘치고 실력도 있었다. 원하는 대학, 원하는 직장을 실패없이 입학, 합격했다.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불안과 좌절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초라해졌다. 그럼에도 나를 노출시키고 나의 마음을 할퀴는 발언도 조언으로 받아들이며 무던히 성장하려고 애썼다. 괜찮아 내가 최후의 승자가 될테니까. 내 젊음은 그렇게 조금씩 소진되었다. 떠올리면 마음이 시큰하지만, 그래도 보람차고 낭만있게 기억된 것은 그 결과가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상처가 되는 조언이 더 이상 나를 성장시키지 못한다고 느낀 것은 직장에 들어간 뒤 부터였다. 선생님, 교수님, 학원 강사분들과 직장 선배, 상사는 달랐다. 좋은 분들도 있었지만 나를 그냥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고, 악의적으로 못된 말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말 꼭 가보고 싶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내가 부족하다는 평판 아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또 그 기회를 얻기 위해 새로운 곳에서 묵묵히 일을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오랜 습관처럼 나를 지키지 못한채 조언으로 받아들이고 잘 해내려고 버둥거렸던 시간들은 무엇이 되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십대 중후반의 기억은 초반의 기억처럼 낭만적이지는 않다. 왜냐면 현재 진행중이니까. 나는 아직도 같은 직장에 다니고, 어느 덧 좋은 선배들과 좋은 상사들, 그리고 나에게 진심인 사람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적절히 구분해낼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혼자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에 들어왔을 때처럼 이 일을 잘한다는 확신은 없다. 이 일 끝에 도달할 꿈이 그 실체가 없다는 것도, 또 내가 그렇게 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반짝반빡 빛나는 사람들을 보며 작고 초라해졌던 마음. 그 속에서도 나를 지키고 내 자리를 얻기 위해 숨죽이고 또 다독였던 시간들. 박준영의 연주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송아의 모습이 마치 나의 모습인 것 같았던 것은 그 까닭이었을 것이다.

 

초라해진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 비교되어 느껴진다는 점에서 상대적이다. 잘 풀리는 내 주변의 인물이 닿을 수 없게 된다는 그 마음, 그 지점에서는 이정경의 감정에도 공감했다. 정경은 뉴욕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준영에게 키스했던 이유를 사랑의 확신이 아니라 질투였다고 고백한다. 자신은 무대 아래에 있는데 준영은 빛을 받으며 무대 위에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준영이 빛을 받게 된 이유는 본인이 조언한 쇼팽 콩쿠르에 나가서 였다. 슬프게도 그녀는 누가 조언을 해주는 것과 무관하게, 더이상 재능이 예전같지 않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과 우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음악을 사랑했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정상의 자리는 모두가 가질 수 없는 만큼 서로의 재능과 성취가 날카로운 상처가 되기도 했다.

 

나는 이 드라마가 그런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이 좋았다.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일도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더 아프다. 못난 감정이지만 외면할 수 없는 그 마음.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2. 상처받고도 계속 사랑한다는 것

송아와 준영은 처음에는 직장 동료로 만나고, 친구관계가 되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친구였던 그 둘의 관계가 연인으로 발전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결정적 계기는 아니지만, 나는 송아가 한없이 초라해졌던 날, 아직 타인이었던 준영이 음악으로 위로를 건넨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송아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날 나는 알 수 있었다. 말보다 음악을 먼저 건넨 이 사람 때문에, 언젠가 내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릴 것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상처받고 또 상처받으면서 계속 사랑할 것임을, 그날... 알았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내가 너무 초라하고 또 숨기고 싶었던 날, 그때 나에게 편견과 판단 대신 마음을 다해, 말이 아닌 행동과 눈빛으로 위로를 건넨 사람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아직도 그날 그 눈빛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날 나는 큰 위로를 받았고 그래서 계속 살아 나갈 수 있었다. 그 때부터는 그 사람의 다른 것은 중요해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죽을 때까지 생각날 그 감정과 순간아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지점인지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공감을 받은 느낌이었다. 좋아해서 초라해졌던 순간들, 그 순간을 곁에서 지켜주고 위로를 건넨 그 순간, 나는 행복했다.

 

그 시간으로부터 좀 더 살아보니 인생은 그런 것 같다. 사람에게 상처받았다고 사람을 다시는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고, 일에서 좌절했다고 아무것도 꿈꾸지 않고 살아갈 수도 없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상처받을 가능성까지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20대의 나, 어쩌면 나는 아직까지도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잘되지 않으면 그만하면 될 텐데 또 해보고 싶었고, 한 번 상처받으면 다음에는 기대하지 않으면 될 텐데 다시 기대했다.

 

나는 왜 이렇게 포기를 못할까.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좋아했던 일이라도 계속 상처를 받으면 어느 순간 내려놓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조금 더 해보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것 역시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3. 포기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결국 송아는 바이올린을 내려놓는다. 사람들은 드라마의 결말이 현실적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결말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고 한순간에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상처받고, 흔들리고, 그래도 다시 해보고, 다시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이 길을 계속 가고 싶은가. 그리고 결국 자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것을 스스로 내려놓는다.

 

예전의 나라면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선택에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오랫동안 원했던 것을 포기하는 것은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 꿈을 위해 사용했던 시간도 인정해야 하고, 그동안 견뎠던 수많은 순간들도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이것을 이루지 못한 나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한다.

 

나는 아직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다. 일반 직장인은 꿈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이어갈 수 있다. 형태는 다를지라도 지금도 내가 원하는 어떤 모습들을 향해 계속 가고 있다. 아직도 불확실하고 불안하고, 가끔은 그만두고 돈이나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원했던 것이 이 꿈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어쩌면 포기하는 편이 더 좋은 것은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 계속 도전하는 것이 정말 용기인지, 아니면 포기해야 할 순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드라마의 결말은, 청춘들이 꿈을 꾸면서, 그 꿈이 커리어든 사랑이든, 발생할 수 있는 감정과 사건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꿈을 끝까지 붙잡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붙잡고 있는 동안 얼마나 행복했고 얼마나 초라했고 얼마나 많은 위로와 상처를 받았는지를 아주 천천히 따라간다.

 

마지막 즈음 송아는 자신이 준영을 사랑하면서 받았던 상처보다 그 사랑을 통해 받은 위로와 행복이 더 컸다고 한다. 어쩌면 좋아하는 것을 잘 하고, 또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에서 꿈을 펼치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냥 좋아하는 것을 해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무수한 일들에 대해 공감과 위로를 받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내가 무언가를 계속 붙잡고 싶다면,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보다 행복과 의미가 여전히 더 큰지를 가끔 돌아보는 것. 그리고 어느 날 그렇지 않다고 느낀다면 내려놓는 것. 계속하는 것도 용기이고 그만두는 것도 용기일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커리어적으로 성공을 거두면 상처받지 않을까? 과연 그 끝이 있기는 한걸까? 삶은 계속된다. 결혼을 하더라도 이혼을 할수도 있고, 성공을 하더라도 다시 실패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을 살피고 나를 소중히 여기고 결정을 하며 나아가는 것.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사랑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고 나아가고 있다. 아직 나의 커리어에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아마 그래서 지금도 계속 가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지금 붙잡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게 될 수도 있고, 생각보다 훨씬 오래 붙잡고 살아갈 수도 있다. 다만 그때만큼은 내가 포기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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